문학의 향기

물 긷는 사람/이기철

ds3ckb 2016. 9. 28. 22:39

 

 

물 긷는 사람/이 기 철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오늘 하루 빛나는 삶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내를 건너는 바람 소리 포플러잎에 시릴 때

아미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손으로 걷어올리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땅의 더운 피를 길어 제 삶의 정수리에

퍼붓는 사람이다

 

풀잎들의 귀가 아직 우레를 예감하지 못할 때

산의 더운 혈맥에서 솟아나는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흰 살이 눈부신 아침 쟁반에 제 하루를 담아

저녁의 편안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나무들도 아직 이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른 새벽에

옷섶이 터질 듯 부푼 가슴 여미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목화송이 같은 아이들과 들판같은 남편의

하루를 예비하는 사람이다

 

물 긷는 사람이여, 그대 영혼의 물을 길어

마른 나뭇잎처럼 만지면 부서질 것같은

나의 가슴에 부어다오

나는 소낙비를 맞고 가지 끝에 꽃을 다는 아카시아처럼

그대 영혼의 물을 받고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