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독서신문 = 조순옥 편집위원]
“어떻게 살아야 하며,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이런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삶에 대한 본질을 알려고 하는 것은 앎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알아가고 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 그러기 위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인내하는 것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질문의 답이자 해결 방법일 것이다. 앎에 대한 사랑은 자신을 사랑해야 생기는 것이다. 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본능적인 행동에서 출발해야 한다.
갓 태어난 아이는 첫 사흘 동안은 추위도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엄마의 뱃속이 아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세계로 던져져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곳은 수많은 질서와 상징들을 알도록 강요하며 소리를 내기 때문에 만약 엄마의 뱃속에 있었을 때처럼 지내려고 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소리들 멀어지고/ 내 목소리만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린다/ 아니, 온몸에서 울린다/ 나는 잠시 종이 되는 수밖에/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종소리/ 아주 잠시 그것을 볼 수 있다
- 『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중 「시원(詩源)」
앎의 ‘소리들’, ‘목소리’, ‘종소리’는 세계로 나간 자아가 조각나고 분열된 모습의 불안과 공포를 봉합하고 극복하기 위한 자신을 사랑하라는 소리들이다. 이들의 소리를 음악으로 이해할 때, 즉 음악을 통해 우주와 소통할 때 본질을 알 수 있음을 말한다. 음악은 태초의 언어이다. 성경 창세기의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태초의 언어란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 전의 로고스이다. 여기서 로고스는 근대 이성주의의 산물인 로고스가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기 전, 분별심이 생기기 전에 존재했던 태초의 언어이다.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사물은 언어를 갖고 있으며, ‘말함’으로 사물은 창조된다.
은밀한 진리의 언어를 열망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온몸에서’ 소리가 울리도록 해야 한다. 소리를 알기 위해서는 앎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종이 되는 수밖에’ 없다. ‘종소리’를 그것도 ‘아주 잠시 그것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숭고의 미학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분별심 이전에 존재했던 태초의 언어를 통해 분열된 자신을 통합해 나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자신을 봉합하여 행복한 시간을 만들려면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지니고 있는 능력 중에서 제일 먼저, 밖에서 자신의 몸에 와 닿는 여러 가지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앎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은 혁명은 끊임없는 앎에 대한 사랑이었고 본질에 대한 탐구의 연속일 때 가능하다. 앎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게 삶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현재의 내 모습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왜?’ 또는 ‘무엇 때문에?’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을 해 온 사람의 내일은 오늘과 분명 다를 것이다. 그래서 전자(前者)에게는 의미가 없던 삶이 후자(後者)의 경우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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