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수선사,조선통신사비(대마도기행4편)

ds3ckb 2009. 8. 22. 16:34

여행중에 가이드의 돌발퀴즈 하나!!

'여러분은 이 봉지안에 든 물건의 용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힌트는 집에서도 차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남녀공용 입니다'

겉봉투의 반쯤만 살짝 보여주면서 정답을 맞추시는 분에겐 이 물건을 선물로 준다고 내세웠는데...

일행35명중에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모두 오답이었다.

나의 뇌리속에 번개처럼 번쩍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나서 손을 들었다.

"급한 용무에 쓰이는 물건 같습니다"

"와~~~ 외숙언니 센쓰 있쏘용."

가이드의 칭찬과 함께 희한한 이 봉투를 선물로 받았다.

이 봉투안에는 소변용 봉지에 약간의 분말이 들어있는데

소변을 담아두면 서서히 응고한다고 한다. 물론 지퍼락으로 잠그게 되어있다.

근데 집에와서 요리조리 구조를 찬찬히 살펴보아도 남성들은 사용하기 그런대로 편리하게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여성들이 사용하기엔 구조상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자세로 실험을 해 보았지만 도무지 편편찮은 소변봉투.

일본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별난 물건도 다 있다.

 

 

수선사 정문

규모가 아주 작은 절이다

일본의 절은 거의 개인 사찰이라도 한다.

일본스님은 결혼을 할수있고  대를 이어서 사찰을 세속도하니  우리내 조계종 절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은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일본에 잡혀가 그곳에서 순국하신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수선사는 일본의 다른 신사와는 달리 불교사찰로

백제의 비구니였던 법묘스님이 창건한 사찰인 슈젠지라고 전해져 온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74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1906년 의병을 일으켜 항일 운동을 하다

일본군에 붙잡혀 대마도로 유배되어 감금되었고 

그곳에서 단발을 강요당하자 단식하기로 결심하고,

단발조치가 철회되자 단식을 중지했으나 단식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순국했다고 하며

선생이 돌아 가신 후 이 수선사에  모셔 장례를 치루었다고 한다.
선생은 대마도로 유배되어 갈때 일본땅은 밟기 싫다며

신발창 밑에  고국의 흙을  깔고 갔다고 전해진다.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대한인 최익현선생 순국지비’를  수신사에 세웠다
우리 일행은 최익현 애국지사의 비석 앞에서 잠시 선생의 애국심을 기리는 경건한 묵념을 올렸다.

 

 

수선사 내 어린이 묘역    
지장보살은 어린이를 위한것으로, 장성하지 못하고 어릴때 죽은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게해달라고 빌어주는 보살이다.

대마도에서는 1년에 한번 7월 24일 지조봉(地藏盆) 축제가 있는데,

이날은 아이들을 위한 마을의 축제이며,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유카타를 예쁘게 입히고 아이와 손을 잡고 나와,

불꽃 축제등을 즐기며그 날, 이 앞치마를 모두 걷어 불태우고, 새 턱받이로 갈아 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일찍 잃은 자신의 어린 자식에 대해  부모는 자식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집 마당이나 근처에 이렇게 불상을 두고 아침마다 기도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기들이 죽으면 일정기간 혼령을 밖에 모셨다가 장례를 치룬다.

불상에 입힌 옷은 앞치마가 아니라 아기들이 밥먹을 때  매어주는 턱받이라고 하는설도 있고

혼령이 추울까봐 옷을 입혀준다는 설도 있다.

그 의미가 어떠하든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보낸 어미의 애절함이 묻어나는 곳이다.

 

 

 

수선사 내  공동묘지의 묘비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마을에 인접하여 공동묘지가 있는게 특징이다.
절내에 묘지가 있는것은  일본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는 문화인데,

화장을 해서 비를 세워 답골당에 모시는데 일반인들의 납골은 대부분 절에 모신다
일본의 절들은 도심이나 시골이나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경우도 많고,

주택가 한 복판에 있는 절 내에 이렇게 납골당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조상을 모신곳에 후손들을 차례로 모신다.

한국에서는 납골당을 혐오시설로 동네에 들어서는것을  결사반대하는 장면을 많이 볼수 있는데

일본인들은 이를 꺼리거나, 두렵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죽은 조상들을 집 가까이 모시면 조상의 신이 자신들을 늘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

무덤을 가까이 두고 생활하는것도 자연스럽게 문화의 하나로 정착되었는데

이러한  장묘문화는 우리도 참고할 만 한것 같다.

 

 

'대마역사민속자료관'....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구역이다.

일본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대륙문화를 도입하는 요충지로서 위치한 대마도의

역사적 문화유산과 각종 민속자료조선통신사들의 행적 등 

우리나라와 관련된 문서들이 많고 대마도의 민속자료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특히 조선과 대마도의 교류관계를 살필 수 있는 약 46,000점의 방대한 자료가 있다.

 

 

이곳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유난히 감시가 심하다.

여기 실린 사진은 우리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자료이기에 팜플랫을 재 촬영한 것이다.

조선 왕실이 대마도의 왜인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준 임명장이다.

대마도인에게 조선의 임금이 관직을 하사한 것이다.

것이야말로 대마도가 조선땅이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까?

그동안 대마도가 조선에 예속되었다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고

이곳을 찾은 많은 한국관광객의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것이 그들에겐 몹시 불편했던지

지금은 전시물에서 삭제해 버렸다.

 일본인 평창진이 조선의 왕에게 관직을 받았다는 증서  

                .

 

나가사키현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앞에 있는 고려문이다..

조선통신사들을 성대하게 맞이하던 문이다.

조선통신사는 일본 에도시대에 조선에서 파견한300명~ 5백여명의 문화사절단으로

서울 출발 후 부산을 경유해서 대마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때 대마도에서는 환영행사로 2천여명이 동원됐다고 하니

한반도가 대마도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기념해서 지금도 대마도에선 섬 최대의 행사 ‘아리랑 축제’란 이름으로

매년 8월 조선의 문화사절단인 통신사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

하지만  역사 속에는 바로 우리조상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민속자료관 입구 좌측에 있는 조선국통신사비.

 나가사끼  현립 역사자료관으로 들어가기 전 왼편에는 조선통신사비가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 후 대마도는 국교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 결과 도쿠가와 막부 260년간(1697~1811) 12차례에 걸쳐 통신사들이 일본을 방문했다고 한다.
초창기의 통신사는 막부 장군의 장군직 계승 등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의 임무였으나

차츰 국서교환 등의 임무가 주어지는 등, 외교적 활동을 넓혀갔다고 한다.

통신사 일행은 대개 300~500명 정도의 인원이었으며,

조선의 앞선 문화로 인해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하나의 문화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한다.

당시 한번 사절단이 왔다 가기 위하여,

대마도 도주는 그 앞뒤 3년간을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려 있어야 했다고 한다.

일본에 간 통신사와 일본 관리들의 학문이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기도 했는데

조선통신사가 일본 문화에 미친 영향은 아주 컸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비는 조선통신사 제도를 통한 조·일양국의 우호관계를

21세기 한일관계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로 세워진 비라고 한다.

 

 

 

 

 

 대마도주의 성문...

건축물은 대마도에 불이나 대마도 성 인근이 모두 불에 탔단다.
이때 소실되어 나중에 복원하였고 이로 인하여 대마도 주민의 불조심은 각별하다.

이 성을 금석성(킨세키죠=金石城)이라 부르며 은 1669년에 소오요시자네가 건설한 성인데
성터에는  돌담기술이 남아있는 문화재라고 한다.
대문은 노문(야쿠라문=櫓門)으로 1990년 복원되었다고 하며 사무라이 기질이 있어 보이는
형태의 독특한 누각의 문으로 되어 있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이곳이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외동 황녀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비이다.
덕혜옹주는 고종(高宗)과 후궁인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종이 회갑에 얻게된 딸로, 고종의 총애를 받고 자라던 13세의 어린나이에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고종의 독살설이 이후 덕혜옹주는  반드시 물병을 갖고 다니며

남이 주는 물은 절대 마시지 않았다고 하니 가히 그 스트레스를 짐작할 만하다.

일본의 학습원에서도 교우들의 멸시와 이지메,왕따등으로 향수병이 짙어

급기야 1930년 봄부터 몽유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영친왕의 거처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1931년  대마도 도주의 후예인 백작 소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해 딸 정혜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 후에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결국1953년 다케유키와 이혼하게 된다.

당시 정신병은 신체 장애와 함께 상당히 부끄러운 질병 가운데 하나였고,

특히  덕혜옹주의 정신병은 당시에는 상당한 수치로 여겼다.

남편 다케유키는 이를 꺼려해서 덕혜옹주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하지 않고

집안에 감금상태로 두었고,

옹주가 자꾸 집밖을 나가려고 하자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고 전해진다.
태어나자 마자 옹주의 정신병 재발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옹주의 딸 정혜(마사에)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더 사랑했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하나 있는 딸마저도 결혼에 실패하고 변사하는 비극을 겪었고,

1962년 귀국할 때까지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비극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힘없는 나라의 황녀로 태어나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서 교육받게되고 정략결혼에 이르러

심한 향수병과 스트레스로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78세의 나이로 한많은 생을 마쳤다 ..

비극적인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들으며

옹주가 아닌 한여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불행한 삶에

내자신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숨길수가 없었다.

이 비석은 애초에 1931년 5월에 세웠으나 도로공사로 철거되어 깨어진 채로 방치되다가
한국인 관광객이 증가하자 특별한 관광거리가 없는 이곳에

지난 2001년 11월에 킨세이키성 유적지 안의 스미즈공원에다시 복원해 놓은 비석이라고 한다.

 

비석내용에는 옹주를 강제로 정략결혼시킨  일제의 만행은 한자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국민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두사람은 애정이 깊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양국민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기원한다고 새기었는데 자국의 왕은 천황이라고 내세우면서

옹주의 친정인 한국왕실은 단순히 왕가(王家)로 표현해놓은 국수주의앞에 

 과연 진정한 선린우호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종무지宗武志) 그림으로 아소만을 배경으로 그렸다고 한다

대마역사민속자료관을 들어서면 입구의 바로 오른쪽 벽에 결려 있다

<위의 사진은 1931년 대마도를 종무지와 덕혜옹주 부처가

     방문하였을때 찍었던 사진 .덕혜옹주는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즈하라의 면세점

이곳은 한국관광객만을 위한 곳인지 직원들 모두가 한국인이고

이즈하라에서 유일하게 한국어가 자유로이 통용되는곳이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한화,일본화,달러화,신용카드가 모두 쓸 수 있지만 

딱 한가지 안되는것이 있다고 한다.

그 한가지는 무엇일까요?

                                

                         .

                         .

                         .

                         .

                         .

                         .

"저요"

바로 외상  안됩니다.ㅎㅎㅎㅎ(가려진 글자를 드래그 하여 보세요)

호호 ..외숙언니..이번에도 정답입니다.

퀴즈 상품은 면세점 안내 팸플릿 한장 드립니다.

 A~~~~C.이게 뭥미??

 

 

 

 

하늘을 향해 날아보자...훠얼훨.

 

 

 내일 대마도 여행 마지막편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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