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종사는 충주시내 외곽 금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말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흥왕하다가
조선 중엽 1700년경 헐려 폐사지로 버려졌던 것을
혜국스님이 30년간 불사로 고려시대 융성했던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었다.
호암동에서 직동 골짜기로 가면 살미면 재오개로 넘어간다.
발티 막바지쯤에서 좌측 금봉산골짜기에 장엄하게 자리잡은 석종사이다.
절을 중창하신 혜국스님은 해인사로 출가하여 일타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젊은 수좌 시절 해인사 장경각에서 발심으로 소지(燒指) 수행(수행중 번민과 고뇌에서
해탈하기위해 자신의손가락 을 태우는 의식) 한 일화는 불가에서는 유명하다.
태백산 도솔암에서 수년간 장좌불와 정진을 하였고,
해인사, 상원사, 송광사, 칠불암, 봉암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며
일생을 수행에 매진하여 왔다..
1980년 후반에 제주도에 남국선원을 개원하여
무문관(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는 선방)을 운영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장독의 행렬이 장관이다.
이 많은 장독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한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나의 고약한 성미때문에
장독뚜껑을 살며시 들어보았더니 장독은 텅~~비어있다.
아마도 중부지역 최대의 선방으로 자리잡을때면 전국에서 모인 불자들의
공양을 위한것으로 준비되어 있는것 같았다.
참선방에서 나오신 스님들께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스님과 마주칠때면 공손히 합장을 하는것이 절간에서의 예법이다.
마치 경주 불국사를 닮았네요
충주 호암지
제천에 의림지가 있다면 충주에는 호암지가 있다.
시내에 위치하여 몇번인가 지나치기는 했지만 직접 가 본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록을 보면 호암지는
달천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준공된 저수지이다.
당시 충주수리조합장이었던 일본인이 충주면(현 충주시) 주민들에게
강제부역을 시켜 11년간의 공사 끝에 준공하였는데
기계와 장비 없이 삽과 지게, 우마차 등을 이용해 사람의 손으로 조성한 저수지라 한다.
1933년 5월 1일에 세운 ‘호암지 수리조합장 사업공공기념비’에
호암지 조성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