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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악하악_ 이외수

ds3ckb 2009. 11. 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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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개 두 종류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는 자신의 외모를 비추어볼 수 있는 마음 밖의 거울이고 하나는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볼 수 있는 마음 안의 거울이다. 그대는 어느 쪽

거울을 더 많이 들여다보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하늘 비친

몽요담에 귀를 씻는 모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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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좁쌀만한 인간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크기도 좁쌀만하고

마음이 태산만한 인간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크기도 태산만하다.

마음의 크기가 좁쌀만 한 인간은 영혼이 좁쌀 속에 갇혀서 자신의 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마음의 크기가 태산만 한 인간은 영혼이 태산 위에 올라 천하만물을

두루 살피니, 지금 그대 영혼이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한번 말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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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답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정답을 실천하면서 살기가 어려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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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촌만큼 크면 반드시 대학생이 되어야겠다. 삼촌은 대학생이다. 삼촌은

공부를 안 한다. 맨날맨날 놀기만 한다. 부럽다. 대학생이 되면 공부를 안 하고

학원에도 안 가고 맨날맨날 놀기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크면

꼭 대학생이 되어야겠다. - 어느 초딩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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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은 이따금 '다른 답'을 창출해낸다. 그러나 무식한 채점관들은

'다른 답'과 '틀린 답'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순간에 천재를 둔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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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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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끝에 살인나고 친플 끝에 '정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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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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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학교 한문시험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한자말의 뜻을 적으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한 학생이 '백 번 묻는 놈은

개만도 못 하다'라고 답을 적었다. 한문 선생님은 그 학생의 창의력을

가상스럽게 생각하여 반만 맞은 걸로 평가해 주었다.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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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들이여. 남편들이 사랑고백을 자주 하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지 말라.

남편들이 날마다 출근해서 녹음기처럼 되풀이되는 상사의 역겨운 잔소리를

참아내고, 자존심을 있는 대로 죽이면서 거래처에 간곡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헤비급 역도선수의 역기보다 무거운 스트레스를 어깨에 걸치고 퇴근하는 모습,

그 자체가 바로 그대와 자식들을 사랑한다는 무언의 고백임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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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꼭 지켜" 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비밀은 누설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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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를 육지에서 한 번만 경주를 시키고 토끼를 자만과 태만을 상징하는

동물로 간주하거나 거북이를 근면과 겸손을 상징하는 동물로 간주하면 안 된다.

바다에서 경주를 시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어떤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방식은 거의가 이런 모순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이

그대를 과소평가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그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주 유일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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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하실 때 '진달래'와 '철쭉'을 혼동하시는 것쯤은 애교로 봐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글을 쓰실 때 '하는데'를 '하는대'로 쓰시거나 '인간의'를 '인간에'로 쓰시는

경우는 참을 수가 없어요. 심지어 당신은 '을'과 '를'조차도 구분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면서도 당신이 뉴요커라는 자부심을 과시하면서 대화 중에 뻑 하면 고명처럼

삽입하는 영어, 제게는 구토감을 유발시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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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시련과 고통에는 나약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터프해 보이고

싶어서인지 다소 폭력적인 언어들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술 한잔 쏴라, 영화 한편 때리자.

죽여주잖냐, 해골 뽀개지네, 염장 지른다, 썩소를 날리고 있네, 눈깔 튀어 나온다,

배 터지게 먹었다 - 이런 표현들을 그대로 외국말로 직역해서 외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어떤 반응을 나타내 보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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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쑤시개가 야구방망이를 보고 말했다. 그 몰골로 누구의 이빨을 쑤시겠니, 쓸모없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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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인간극장 프로에서 우리 집 개가 묶여 있는 장면을 보고 어떤 인터넷 게시판에

개를 풀어주라는 글을 올렸다.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 같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 집 주변에

밀렵꾼들이 설치한 덫이 많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밖에 자기 시각으로만

어떤 상태를 단정하고 불만을 토로하신 분들이 있었는데 하악하악, 해는 반드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리면 납득하실까. 오늘도 먼 산머리 조각구름은

거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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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가 실존했다면 단언컨대 서른이 되기 전에 자신을 창조한 작가 콜로디를 목졸라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신의 심벌이 커지게 만들지 않고 하필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코가 커지게 만들다니, 얼마나 복장이 터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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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여자들을 군대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군대얘기, 축구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가장 듣기 싫어한다지만 만약

여자들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갔다 와야 한다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하악하악. 여자들의

수다는 지금보다 백배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날마다 그 수다를 들으면서

신경쇠약으로 말라죽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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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돌아보면 눈물겨워라. 마음을 비우기 전에 내장이 먼저 비어 있었던 내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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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곱 갑 피우던 담배, 어제는 두 갑으로 줄였다. 이만하면 괜찮은 의지력이라고

자뻑하고 있다. 이제 야동만 줄이면 된다. 하악하악.

 

 

- 이외수의 <하악하악> 중에서 -

출처 : 하악하악_ 이외수
글쓴이 : 무량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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