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날의 비망록
- 마 정인 -
하룻밤쯤 은밀한 사랑을 하고 싶다.
내장에 낀 찌꺼기를 버리고
마음의 지방질을 비워내 버린 나는
이즈음 검불처럼 가벼우니
훈훈한 가슴을 가진 바람이여
민들레 홀씨 물고 가듯
이 몸을 무등 태워 가다오
그대 맑은 피가 흐르는 길목이라면
자그만 오두막이어도 좋으리
담배연기 결은 장지문을 닦아
갓 바른 창호지에 밀풀 향기 마를 즈음
팽팽한 햇살이 통통 북을 울리리
밤이 되어 속살거리는 풀벌레 소리
섬돌까지 물밀듯 밀려와도
눈썹을 치켜 뜬 달빛
쪽마루 끝에 부딪혀 꽂혀도
내마음의 길을 모두 지워버리고
하룻밤쯤 은밀한 사랑을 하고 싶다.
Sunflower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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