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다리는 이름이 없다.
심지어 썩어버린 개천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에도 이름이 있는데,
섶다리에는 누구도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가을과 겨울엔 차가운 강물 위를 지키고 있다가 봄이 지나 장마가 오면
물살에 떠내려가는 그런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다리다.
여름 장마비로 무섭도록 불어버린 강물에 섶다리가 쓸려 내려가면
사람들은 줄배나 나룻배로 강을 건너곤 했다.
그리고 가을이 와서 강물이 얕아지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다시 섶다리를 놓았다.
섶다리는 한끝 욕심이 없어 생긴 그대로 소박하다.
Y자 모양의 나뭇가지에 소나무, 참나무 가지를 얼기설기 얹은 다음,
그 위에 황토를 개어 만들었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아,
오직 나뭇가지끼리 서로 지탱하는 힘에 건너는 이의 몸무게를 맡겨야 한다.
다리에 발을 내디디면 출렁출렁 흔들리는 품이
자칫 다리 아래 자갈이 훤히 비치는 맑은 물로 빠지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다.
개구쟁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누구 지켜보는 이만 없으면
발걸음을 퉁퉁거리며 다리를 계속 왔다갔다 해보고도 싶고,
힘을 주어 다리를 흔들어보고 싶어진다.
한 사람이 건너기에도 아슬아슬할 정도로 폭이 좁은 다리.
이곳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섶다리를 건널 때는
마주 건너 오는 이가 없는지 살폈다고 한다.
중간에서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비켜줄 수도 없어 누군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나이 드신 어르신이나 무거운 짐을 진 이와 마주치면 그가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아이 손을 잡은 어머니는 다리 건너기를 양보한 사람에게
살짝 수줍은 눈인사를 건네며 먼저 다리를 건넜다.
그래서 섶다리는 다리를 건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앞서는,
요즘엔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함을 품은 그런 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콘크리트 다리가 하나 둘 들어서면서
섶다리의 미덕은 어른들의 추억 속에나 남아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좀 돌아갈지언정
폭이 한없이 넓어 차 두 대도 거뜬히 마주 지날 수 있는 콘크리트 다리를 애용한다.
그래서 마주 오는 사람들끼리 눈인사나 고마움의 미소가 오고가기엔 다리 폭이 너무 넓어졌다.
그리고 섶다리는 관광객을 위한 명소로 남아 버렸다.
항상 복작거리는 넓은 길과 넓은 다리만 다니던 외지 사람들은
강을 가로질러 수줍게 놓인 섶다리를 발견하곤 차를 세운다.
그리고 같이 온 이들과 섶다리를 왔다갔다 건너보고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어렸을 적 향수,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의 한자락을 떠올린다.
(Daum지식창에서 발췌)
강원도 주천면 판운리에 있는 섶다리. ...
주천리에서 평창쪽으로 10 여분...판운리의 섶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추억 하고픈 향수를 가득 품고서...마음이 평화로워 지더군요~보는것 만으로...^^;;
주천리에 있는 쌍섶다리 보다는 더 운치가 있는듯...
똑바르지 않고 구부러진 건 토속적인 멋인가 아니면 기술의 부족인가.
하기야 똑바로 맞추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정확성을 높이 평가하는 서양의 가치와는 다른
느긋함이 있기에 이렇게 구부러진 것에 대해 아름다운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눈이 내려 저 나무 위에 쌓이면 훨씬 더 멋진 경치가 될 것 같다.
무지하게 추웠다는 기억이 강하게 남다.
주천강에 있는 쌍섶다리.
솔가지 위에 덮혀 있는 마사토가 강 추위에 단단히 얼어붙어 있다.
영하6도의 매운 추위에 강주변엔 마치 무늬유리와도 같은 영롱한 얼음이 얼기 시작하였다.
한겨울의 짧은 햇살에 부서지는 빛의 비늘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