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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오탁번

ds3ckb 2008. 8. 26. 23:35
       굴    비

                    오탁번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라왔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시인 오탁번 <굴비> 전문 (시와시학 2003.여름호)

그동안 많은 시를 읽으면서 지난 우리들이 학창시절에 배웠던 시와 비교를 하게된다.
우리들이 교과서를 통해서 배웠던 시들은 일률적으로 곱게 전개 되어있었다
이는 사상과 혁명, 개혁적인 내용의 시는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시의 형상이 많은 변화가 되었다.
도저히 저런 것도 시일까 라고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드는 시가 많다는 것이다.
위에 적어 놓은 '오탁번 시인'의 글은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준다.

'웃음천국'에 게재를 해 놓아도 좋을 듯한 글이다.
그러나 몇 번을 읽다가 보면 씁쓸한 웃음을 짓게한다.

* 오탁번 시인은 1943년 7월 3일 ,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 났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육군사관학교,수도여자사범대학,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역임,
   1997년 정지용문학상,199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