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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불

ds3ckb 2013. 1. 29. 11:05

[정여울의 시네마 레터] 장발장, 버려진 인간에서 혁명의 불꽃으로 부활하다 - <레 미제라블> 정여울의 시네마 레터 2013.01.11
장발장, '버려진 인간'에서 '혁명의 불꽃'으로 부활하다 - <레미제라블>
분노, 원한, 증오의 눈물만을 흘리며 살아온 빵 도둑 ‘장발장’은 주교를 통해 큰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괴물같은 세상과 싸우다가 자신 또한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을 뼈아프게 인정한 장발장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장발장은 단지 ‘한 명의 버림받은 개인’이 아니라 혁명군과 함께 싸우고 그들을 최선을 다해 도움으로써 ‘타오르는 혁명의 주체’로 거듭난다.
1.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사람
가도 가도 처참한 밑바닥만이 만져지는 삶.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은 삶. 아무리 노력해도 진창에서 벗어나 올 수 없는 삶. 장발장(휴 잭맨)은 그런 삶의 주인공이었다. 장발장은 굶주리는 조카를 위해 빵 하나를 훔친 죄로 감옥에 갇혔고, 몇 번의 탈옥을 시도하다 형량이 늘어나 무려 19년이나 감옥살이를 했다. 인생의 가장 눈부신 시기를 감옥에서 무참히 시들어가야 했던 그는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자유’라고 믿었지만, ‘가석방’은 또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었다. 그에게는 ‘위험인물’이라 낙인찍힌 치명적인 신분증서가 따라다녔던 것이다. 누구도 그를 먹여주지도, 재워주지도, 일을 시켜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평생의 적수, 경관 자베르(러셀 크로우)가 그를 집요하게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가 모든 희망을 접은 채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그를 구원해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미리엘 주교님이다. 주교님은 장발장의 신세를 짐작하면서도 기꺼이 자신의 숙소 안으로 그를 ‘초대’하여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준다. ‘친구’라는 호칭도, ‘초대’와 ‘식사대접’이라는 단어도, 도무지 장발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식사, 따뜻한 미소, 따뜻한 축복의 말들까지. 평생 관계의 추위 속에서 얼어 죽을 지경이었던 장발장은 처음으로 인간의 온기를 느껴본다. 하지만 마치 그 알 수 없는 은총의 주인에게 복수라도 하듯, 장발장은 주교님의 은 식기를 훔치고 만다. 그러나 그 이후의 주교님의 대응이 더욱 장발장을 당혹스럽게 한다. 은 식기를 훔쳐간 것을 알면서도, 잡혀 온 장발장에게 오히려 ‘왜 은 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냐’고 묻는 주교님. 그는 장발장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자신이 가진 어떤 것이라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장발장은 분노의 눈물, 원한의 눈물, 증오의 눈물만을 흘리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신의 품에 한 번도 안겨 본 적이 없는 장발장은 처음으로 주교님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보다 큰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는 비로소 원망과 증오, 분노와 원한으로 얼룩져 그 어떤 믿음도 사랑도 잃어버린 자신의 인생을 똑바로 대면하게 된다. 괴물 같은 세상과 싸우다가 자신 또한 괴물이 되어버렸음을, 뼈아프게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로부터 도망치자. 이제 ‘나’라는 굴레, ‘장발장=위험인물’이라는 소름 끼치는 낙인으로부터 벗어나자. 법률과 제도에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나’를, 온전히 해방시키자. 그러기 위해 장발장은 자신의 신분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신분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까지 모두.

장발장은 오랫동안 울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고, 흐느끼며 울었다. 여자보다도 연약해지고 어린아이보다도 무서움에 떨면서. 울고 있는 동안에 그의 머릿속이 차츰 밝아져 왔다. 기이한 밝음, 홀가분하고도 무서운 밝음이었다. 그의 과거의 생애, 최초의 과실, 길고 긴 속죄, 그리고 짐승처럼 되어버린 겉모습, 서서히 굳어져 냉혹해진 내면, 그토록 많은 복수를 계획하며 기다린 석방, 주교의 집에서 일어난 일, 마지막으로 그가 저지른 일, 소년에게서 40수를 훔친 일, 주교의 용서 뒤에 있었던 일이니만큼 더욱 비겁하고 더욱 흉악스러웠던 그 죄, 그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또렷이 되살아나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밝음 속에 떠올랐다. 그는 이제까지 살아온 자기 삶을 바라보았다. 끔찍스러운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자기 영혼을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부드러운 밝음이 그의 삶과 영혼 위에 비치고 있었다. 그는 천국의 빛을 받은 사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빅토르 위고, 송면 옮김,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2012, 234쪽.




2. 나보다 더 가련한 사람이, 나를 구원해주다
사라진 장발장은 몽트뢰이유 쉬르 메르의 시장 마들렌느 씨로 거듭난다. 드디어 ‘나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한 것일까. 일단 그의 얼굴은 평온해졌으며, 자신감 또한 넘치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진심 어린 의무감으로 충만하다. 그가 시장이 된 비결은 타인을 향한 조건 없는 환대, 도움, 믿음이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그가 미리엘 주교님으로부터 배운 조건 없는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는 일이기도 했다. 빅토르 위고는 장발장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한다. “세금을 내는 일반인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의 소원이었다. 그는 내면으로는 천사, 외면으로는 한 시민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인간이었다.” 가혹한 인간의 입술들은 말한다. 한 번 낙인찍힌 인간은 다시는 구제받을 수 없다고. 그러나 신의 입술, 혹은 사랑의 입술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은 자라도, ‘두 번째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장발장은 바로 그 신의 입술에서 나온 사랑의 말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는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간다. 그는 ‘죄수 출신 시장’이 되었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죄수였던 과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지혜롭고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평화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자베르 경관이 장발장의 도시에 부임해 와 그의 신분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베르를 불시에 만나 당황하는 동안, 고아 출신의 재봉사 팡틴(앤 해서웨이)은 그녀의 미모를 질투하는 여직공들의 계략에 휘말려 공장에서 쫓겨나고 만다. 팡틴은 마들렌느 시장님(장발장)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지만, 자베르 앞에서 쩔쩔매고 있던 장발장은 그녀의 가녀린 애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딸 코제뜨의 양육비와 약값을 떼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내주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팡틴은 일자리에서 쫓겨나자 매춘부로 전락하고 만다. 그녀는 장발장처럼 버려진 존재였으나 장발장처럼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킬 기회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한 사랑스러운 아가씨를 저토록 무서운 나락으로까지 끌고 간 세상의 힘은 과연 무엇인가. 팡틴이 저주받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세상에 대한 분노로, 그러나 아직도 남아 있는 희망으로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는 관객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녀의 표정은 천사와 악마의 표정을 오가며, 낭만적 꿈과 처참한 현실을 오간다. “그렇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꿈도 있죠. 헤쳐나갈 수 없는 폭풍도 있죠.” “이제 삶은 내가 꿈꾸던 꿈을 죽여 버렸지요.”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I dreamed a dream
나는 꿈을 꾸었어요.
There was a time when men were kindz
한때는 남자들이 친절하던 때가 있었지요
When their voices were soft
그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And their words inviting
내 마음을 끄는 이야기를 하곤 했죠
There was a time when live was blind
사랑이 전부이던 때가 있었어요
And the world was a song
세상은 하나의 노래였고
And the song was exciting
그 노래는 날 설레게 했죠
There was a time
그런 때가 있었어요
Then it all went wrong
그리고는 모든 게 잘못되어 버렸어요
I dreamed a dream in time gone by
지나가 버린 옛날 나는 꿈을 꾸었어요
When hope was high
그때는 희망이 가득하고.
And life worth living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었죠
I dreamed that live would never die
사랑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 꿈꾸었고
I dreamed that God would be forgiving
신은 자비로울 거라고 꿈꾸었어요.
Then I was young and unafraid
그때 난 젊고 겁이 없었죠.
And dreams were made and used and wasted
꿈을 만들고 써버리고 낭비했어요
There was no ransom to be paid
그래도 내가 지불할 대가는 없었죠
No song unsung, no wine untasted
모든 노래를 부르고 모든 술을 마셨죠.
But the tigers come at night
그러나 곤경은 한밤중에 찾아와요.
With their voices soft as thunder
그 목소리는 천둥처럼 부드럽지만
As they tear your hope apart
당신의 희망을 갈가리 찢어놓고
And they turn your dream to shame.
당신의 꿈을 수치심으로 바꿔 버리죠.
He slept a summer by my side
그는 내 곁에서 여름을 보냈어요.
He filled my days with endless wonder
나의 나날들을 끝없는 놀라움으로 가득 채우고
He took my childhood in his stride
나의 어린 시절을 즐기고는
But he was gone when autumn came
가을이 오자 떠나가 버렸어요.
And still I dream he’ll come to me.
나는 아직도 언젠가 그가 돌아올 거라 꿈꾸지요
That we will live the years together
우리가 앞으로 계속 함께할 거라고
But there are dreams that cannot be
그렇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꿈도 있죠
And there are storms we cannot weather
헤쳐나갈 수 없는 폭풍도 있죠
I had a dream my life would be
지금 살고 있는 지옥과는 다른 모습일 거라고
So different from this hell I’m living
지금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일 거라고
So different now from what it seemed
내 삶을 꿈꾸어 오곤 했었지만
Now life has killed the dream I dreamed
이제 삶은 내가 꿈꾸던 꿈을 죽여 버렸지요.




곤경에 처한 팡틴을 구해주며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는 장발장. 장발장은 팡틴을 ‘불법 매춘부’로 잡아가려던 자베르 경관으로부터 구해주고, 그녀에게 필요한 곳은 ‘감옥’이 아니라 ‘병원’이라 고함치며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그와 그녀 사이에 남아 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이미 병세가 깊었던 팡틴은 혼자 남겨진 딸 코제뜨를 장발장에게 부탁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설마 훌륭한 정치인이 된 ‘마들렌 시장’이 장발장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자베르가 드디어 장발장의 진짜 정체를 드디어 알아본 직후. 장발장은 자수를 결심하지만, 5살 때부터 아동학대를 당하며 세상에 혼자 남은 코제뜨를 버릴 수가 없다. 코제뜨를 데리고 수도원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장발장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제 장발장의 딸이 된 코제뜨는 처음으로 아무 걱정 없이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꿈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도 잠시, 혁명군에 가담한 청년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진 코제뜨는 처음으로 장발장의 뜻을 거스르게 된다.

꼬제뜨는 5살도 채 되기 전에 그 집안의 하녀가 되었다. 5살에 그럴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말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이 세상의 고통은 아무리 어린 나이에도 시작된다. 최근에도, 고아로 자라나 도둑이 된 뒤몰라르라는 인간의 재판이 있지 않았던가. 재판기록에 의하면, 이 사나이는 5살 때부터 세상에 외톨이로 내던져져 ‘살기 위해 일하고 도둑질을 했다’ 꼬제뜨는 심부름하고, 방과 안마당과 바깥을 청소하고, 접시를 씻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까지 했다. (…) 3년이 지난 이때 꼬제뜨의 어머니가 만일 몽페르메이유에 왔다고 할지라도 자기 아이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토록 귀엽고 생생했던 꼬제뜨는, 지금은 말라빠지고 파리해져 있었다. (…) 불공평한 세상은 그녀의 성질을 비뚤어지게 하고, 불행은 그녀를 추하게 만들었다. 옛 모습이라고는 아름다운 눈만 남아 있었으나, 그 눈은 차라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했다. 커다란 눈이었기에 한결 많은 슬픔이 서려 있는 듯 보였다.
-빅토르 위고, 송면 옮김,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2012, 234쪽.



3. 혁명의 불꽃, ‘가련한 사람들’의 삶을 불사르다
마리우스와 그의 동지 앙졸라가 참여하고 있는 역사의 불꽃, 그것은 7월 혁명(1830) 직후, 6월 항쟁(June Rebellion, 1832년)이라 불리는 민중봉기의 한가운데다. 새롭게 사회의 안정된 자리를 차지한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느라 바빴고, 민중들의 삶은 전혀 개선된 것이 없었다. 세상은 비참한 장발장들을, 가련한 팡틴들을 끊임없이 낳고 또 낳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의 주도하에 일어난 6월 항쟁은 처절하게 실패하지만, 이상하게도 실패한 것 같지가 않다. <레미제라블>이라는 아름다운 작품 속에서 이들의 실패한 혁명은 영원히 살아남아, 희망을 잃은 우리 시대의 민중, 우리 시대의 ‘레미제라블(가련한 사람들)’에게 못 다한 혁명의 바통을 이어주는 것만 같다.



신성한 징역수! 단죄할 수 없는 죄수! 자베르에게는 그것이 바로 현실이었다. 벌을 주기 위한 자베르와 벌을 받기 위한 장발장, 둘 다 법 안에 있으면서 법을 초월하기에 이른 것이다. (…)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처럼 이상한 일이 생기다니, 그리고 아무도 벌을 받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장발장이 사회조직 전체보다 강력하여, 자유의 몸이 되고, 자베르는 여전히 정부의 빵을 먹고 사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자베르에 대한 장발장의 관용은 그를 압도하고 말았다. (…) 자선을 베푸는 악인, 동정심 많고, 다정하며, 남 돕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관대하며, 악에 대해서는 선으로 보답하고, 증오에 대해서는 용서로 보답하고, 복수보다는 연민을 느끼고, 적을 멸망케 하기보다 차라리 스스로 멸망하는 길을 선택하고, 자신을 때린 자를 구하고, 높은 덕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인간보다 천사에 가까운 징역수! 그러한 괴물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자베르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빅토르 위고, 송면 옮김,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2012, 1744~1745쪽.

장발장은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코제뜨를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지만, 마리우스와 코제뜨의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위기에 처한 마리우스를 구해주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장발장은 혁명군에게 잡혀 사형 당할 처지였던 자베르 경관을 구해준다. 자베르만 ‘처치’해버리면, 그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데도, 이미 스스로 ‘죄인’의 굴레를 벗어나 ‘성자’가 되어버린 장발장은 자베르를 지켜준 것이다. 정부군의 총에 맞은 마리우스를 등에 짊어진 장발장은 마치 자신의 험난한 인생을 온몸으로 요약하며 되짚어가듯, 빠리의 가장 더러운 밑바닥, 지하도를 통해 밤새도록 탈주하여 마리우스를 구해준다. 이 장면은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처절하고 감동적이다. 장발장은 단지 ‘한 명의 버림받은 개인’이 아니라 혁명군과 함께 싸우고 그들을 최선을 다해 도움으로써 ‘타오르는 혁명의 주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코제뜨와 결혼할 수 있도록 몰래 도와주고, 수도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소설 속 장발장은 자신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코제뜨와 마리우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유언을 남긴다. “자, 얘들아, 나는 이제 가련다. 언제까지나 서로 깊이 사랑해라. 서로 사랑한다는 것, 이 세상에 그 외의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죽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무서운 것은 진정으로 살지 못한 것이야.”



우리는 저 참혹하게 실패한 혁명에서 장렬에게 전사한 전사들 뿐 아니라, ‘혁명의 그림자’로서 철저히 전사들을 ‘뒷바라지’한 장발장의 노고를 온몸으로 이해한다. 장발장은 단지 고립된 개인으로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피를 뿌리며 스러져간 혁명의 전사들 품으로 기쁘게 안기는 듯 그렇게 죽어간다. 바리케이드 위에서 미소 짓는 그들은 마치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이제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바통을 넘기는 것이니 제발 받아달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이렇게 관객의 눈물은 분노의 눈물을 넘어 희망의 눈물이 된다. 오늘 우리가 붙잡는 데 실패한 혁명의 바통도, 내일이 아니라면 모레, 모레가 아니라면 먼 훗날이라도, 이어갈 사람이 있을 테니까. 혁명가 트로츠키는 이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에 분명한 혁명의 눈부신 가능성을 ‘영구혁명permanent revolution’이라 불렀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보였던 장발장이야말로 가장 멋진 인생의 주인공이었으니. 일평생 패배자이자 도망자의 삶을 살았지만 혁명의 꿈을 놓지 않았던 위대한 전사, 트로츠키의 유언은 마치 아름다운 사람 장발장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아무리 살아봐도 인생은 아름답다.” 우리는 장발장의 평생에 걸친 투쟁을 통해 배운다. 오늘 우리가 졌더라도, 내일의 희망까지 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희망이란 ‘오늘의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일의 타인’을 위한 것이기에. 우리는 처참하게 실패한 그들의 혁명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희망의 불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