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편지글 모음

회갑을 맞은 당신에게 ....

ds3ckb 2012. 10. 24. 19:41

 

 

사랑하는 당신

세월의 흐름은 급류와 같아서 어느새 당신이 회갑을 맞았군요

당신의 회갑을 축하한다는 말대신에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나이를 느낄 겨를도 없이 어느새 회갑을 맞은 당신은

아직도 내가슴엔 우리 처음만나던 날의 풋풋한 청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기억 까마득한 옛적 우리가 20대에 첫만남 이후부터 

어느새 어언 사십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신...우리 결혼하던 그날이 생각나세요?

1980년 2월 24일

바로 어제가 우리의 결혼 32주년이 되는 날이었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오직 뜨거운 가슴하나만으로  가난한 두 연인이  장래를 약속하던 날.
그날은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결혼식내내 흰눈이 펑펑 내렸지요.

결혼하는 날에 눈이 내리면  분명히 나중에 부자가 될 거라는 주례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펑펑 내리던 눈이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언제 눈이 왔냐는 식으로 하늘이 맑게 개어주었지요.

마치 우리의 시작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으나  

지금은 이렇게  따사롭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자리를 맞이하는것 처럼요... 

그때 당신은 딸랑 30만원의 결혼자금으로 소박한 결혼식은 올렸지만 

뚜렷한 직장도 없었고 수돗물도 나오지않는 달동네에서 우리의 신혼생활을  시작했었지요

우리가 결혼예물로 유일하게 주고받은  3돈짜리 결혼반지는

무일푼으로 시작한 신혼생활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처분하여 생활비에 보태써야만 했습니다.

결혼예물로 아내에게 유일하게 해준 금반지만은 팔지 않겠다고 당신은 다짐했지만

그해 겨울.몇장 남지않은 연탄을 바라보며  

결국엔 아내의 결혼반지마저 처분하던날

당신은 내손을 잡고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하셨지요.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일정수입이 없이 선배님의 약국에서 무임금으로 견습생활을 하는동안

첫아이를 가진 아내가 그리도 먹고싶어하던 토마토대신

칠성사이다 한병으로 제 고약한 입덧을 위로해 주던일.. 

처음 약국을 시작할때 큰 시누님께서 무려 300마넌의 개업자금을 선뜻 빌려주신 고마움은

우리가 살아가는동안 가슴에 새겨야 할  은혜였습니다.

그 300 만원의 자금이 소중한  밀알이 되어

이렇게 잎이 무성하게 자란 우리들의 둥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탄광지대인 도계에서  겨우 걸음마를 하던 재선이가 넘어지기라도하면  

그옷은 바로 세탁을 해야할만큼 열악한 환경속의 생활은 그래도 행복한 시간들이었지요.

큰형님과의 불화로 결혼후 2년째부터 3남2녀 자식들중

둘째인 우리가 모시기로 한  시부모님의 마음이 행여 불편하시진 않을까...

노심초사 부모님을 섬기던 당신.

효자아들때문에 그 며느리가 힘들겠다며 이웃님들의 위로가 오히려 민망했던일.

반신불수 중풍으로 3년간 자리보전하시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하직하신뒤

반려자를 잃은 슬픔이 너무 크셨을까...

곧이어 위암수술에 간경화가 겹치셔서 결국 2년뒤에 아버님마저 떠나신뒤엔

이제 우리곁에 끝까지 남아있을 사람은 오직 우리 부부 뿐이라는거을 깨달은

당신의 마음엔 큰 변화가 왔었지요.

부모님 앞에서는 가부장적이고 완고한 성격에 

때론 속좁은 아낙의 마음에 상처를 입을때도 있었지만

이젠 다 지난 이야기들입니다.

지난 30여년을 돌이켜보면..때론 가슴에이는 슬픔도 겪었고  힘들었던 고비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잘 견디고 극복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어린시절부터 지독한 가난과 맞서 스스로 개척하며

약학대학 4년을 장학금과 학생지도 아르바이트 등으로 고학으로 졸업한  

당신의 남다른 의지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0여년동안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지금 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명마의 조련사처럼 나를 이끌어 온 당신의  노력에 감사합니다. 
당신과 내가 이만큼 지켜온 우리의 가정이 더욱 소중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하지 않던가요?

흑룡해에 태어난 당신은 올해가 온통 다 당신의 해가 될것임을 나는 굳게 믿어요.

미래를 예비하는 당신은 머지않은 노후 생활을 대비하여

 아내와 함께 즐길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몫의 카메라도 장만해 주고 당신이 가는곳이라면 어디라도 동행하며

나의 작은 능력이라도 함께 익힐수 있게 해주시니

이 또한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평범한 행복은 아닐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가끔 형제자매들 앞에서 요즘 젊은이들 못지않은 관심의 표현에 나를 민망하게도 만들지만

그것마저 그리 속깊이 싫지만은 않더이다.

요즘들어 절에 가면 나와 함께  백팔배에 동참해주고  

무엇이든 나와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당신의 마음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일백 점 만점의 남편은 못 되었습니다.

불같이 급한 성격을 조금만 더 느긋하게 조절 할 수 있는 능력만 있었더라면

사소한 일상에서의 부딪침도  그리 많지 않았고

당신의 아내는 이전부터 훨씬 더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랑잎에 불 붙듯  당신의 급한 성격 때문에

혼자서 속끓이던 갈등마저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당신도 결국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때가 온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이 쓸쓸해집니다. 
처음만난 날로부터 결혼하기까지 9년여의 세월동안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고

각지고 모난  성격을 삼십여 년을 다시 갈아내고 다듬어 이제는 서로에게 편해지려나 하니

이미 우리 두사람의 검은머리엔  하얀 눈이 쌓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원하는바, 나이들수록 우리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지금의 생활이 난 무척 행복합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며 짧지않은 시간동안 알게 모르게  성실하지 못했던 

나의 허물을  진솔한 마음으로 참회합니다.

살아가는동안 당신께 순종과 겸손의 삶을 살겠습니다.

아직까지 성혼을 이루지 못한 두 아이들에게 우리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기에

당신의 회갑을 더욱 기쁘고 성대하게 보내고 싶었던 제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장래문제로 너무 상심하지 말았으면 해요

아이들이 이 세상에 와서 이만큼 자라는동안  

아이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이미 많이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출근하는 당신의 어깨가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신의 회갑날을 맞으며 나의 소망을 적어봅니다.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고싶습니다.

늘 꿈꾸어왔던  우리의 보금자리인 연송헌(蓮松軒)

그곳에서 새 둥지를 틀게될 꿈에 설레입니다.

 평화로움이 가득한  연송헌에서

아침이면 당신옆에서 잠이 깨고

텃밭에 가꾼  수확으로 아침상을 차리고

햇살 퍼지는 뜰앞의 연못가에 나란히 앉아  

한마디 말없이 바라만 보아도

무슨 말 하려는지 무슨생각하는지 다아 알 수 있는

평생의 연인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비내리는 날이면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마알간 동동주한잔에

고소하고 기름진 따끈한 파전 한입 넣어주며

당신과 함께 고즈넉히 취하고

당신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어도 좋으리...

내옆에 반드시 당신이 있고   

분노도 환희도 희석이되어 서로에게

햇살 흠뻑 머금은 따스한 댓돌같은  쉼터가 되고 싶습니다.

 

이천십이년 이월 이십오일 당신의 회갑을 맞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