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협/이효석(원문 해설)|♡,·´″″°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李孝石)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뭇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 석윳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 생원은 기어이 동업의 조 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 번이나 흐믓하게 사 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 선달이 그 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 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 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바리가 두 고리짝에 꽉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 장수도, 땜장이도, 엿 장수도, 생강 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워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뒤 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 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 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畵中之餠)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낚우었나 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 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 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얽둑배기 상판을 쳐들고 대어 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 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충줏집 문을 들어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 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 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힐 때,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 두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 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어디서 줏어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너에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중략>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 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허 생원은 오늘 밤도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 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 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 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 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로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 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 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 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 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었다.”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오죽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하나 처녀의 꼴은 꿩 궈 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 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구 생각만 해두 진저리 나지…. 그러나 늙으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애와도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금만 전방이나 하나 벌리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 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테야.”
산길을 벗어나서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섧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나 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 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근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졌다. 허 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쪽 씻어 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 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매고 반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 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 망나니예요. 철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한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고 하니 집 꼴이 무어겠어요. 열여덟 살 때 집을 뛰어 나와서부터 이 짓이죠.”
“총각 낫세론 섬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 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 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 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 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 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뎠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허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 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 않는 눈치지?”
“늘 한 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 오려고 생각 중인데,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랬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요. 생원?”
조 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이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 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새끼 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치울 젠 따는 대단한 나귀 새끼군.”
허 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 물을 끓어 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 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 같이 눈이 어둡던 허 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 줄거리
드팀전의 허 생원은 장돌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아직 홀몸이었다.
밤이 들어, 허 생원은 조 선달과 동이와 함께 나귀를 몰고 다음 장으로 발을 옮겼다. 봉평장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달이 훤히 밝았다. 달밤이면 으레, 허 생원은 젊었을 때 봉평에서 겪었던 옛일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개울가에 메밀꽃이 활짝 핀 달 밝은 여름 밤, 그는 멱을 감을 양으로 옷을 벗으러 방앗간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울고 있는 처녀를 만나서 어쩌다가 정을 맺었다. 그는 오늘도 이 얘기를 조 선달에게 되풀이했다.
동행을 하다가 허 생원은 이 날 밤 동이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난 사생아임을 알게 된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의 고향이 봉평이라는 말에 허 생원은 맺히는 것이 있었다. 동이 어머니가 제천에서 홀로 산다는 말을 듣자, 그는 이튿날 동이를 따라 제천으로 가 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득 그는 나귀를 몰고 가는 동이의 채찍이 왼손에 잡혀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그 자신도 왼손잡이였던 것이다.
▶ 어휘 및 구절 이해
애시당초 : 어떤 일의 처음
장(場)판 : 장이 선 곳
휘장(揮帳) : 여러 폭의 피륙을 이어서 둘러치는 막
등줄기 : 등마루의 두두룩하게 줄기진 부분
궁싯거리고 : 별 할 일이 없이 머뭇거리고
춥춥스럽게 : 매우 귀찮게
각다귀 : 각다귀과의 곤충의 총칭. 모기와 비슷하나 훨씬 다리가 길고 피를 빨아 먹지 않음
얽둑배기 : 얼굴이 얽둑얽둑 얽은 모양
흐뭇하게 : 마음에 차게 많이
드팀전 : 온갖 피륙을 파는 가게. 포목점
사다 : 여기서는 물건을 ‘팔다’의 뜻임
바리 : 마소에 짐을 싣는 단위
축 : 패거리
타박거리다 : 힘 없는 걸음으로 천천히 맥없이 걷다
앙칼진 : 몹시 악을 쓰며 덤비는
화중지병(畵中之餠) : 그림의 떡. 마음에 있으나 가질 수 없는 경우에 씀
대거리 : 상대하여 맞서서 대듦, 또는 그러한 언행
후리다 : 그럴 듯한 방법으로 남의 정신을 흐리게 하여 꾀어들이다.
애숭이 :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이는 사람이나 물건
숫기가 없다 : 수줍어하는 태도가 있다
짜장 : 과연. 진실로
서슬 : 날카로운 기세
농탕(弄蕩)치다 : 남녀가 희롱짓거리하며 놀다.
난질꾼 : 주색에 빠져 행실이 부정한 사람
동색(動色) : 얼굴빛이 변하는 것
선머슴 : 덜된 머슴아이
탐탐하다 : ‘탐탁하다’의 방언. 모양이나 태도가 마음에 들고 믿음직스럽다.
서름서름하다 : 남과 가깝게 지내지 못하여 서먹서먹하다.
낫세 : 그만한 나이
닦아세우다 : 남이 꼼짝 못하게 휘몰아 나무라다.
거나해지다 : 술이 얼큰하게 취하다.
바 : 볏집이나 삼으로 세 가닥을 지어 굵다랗게 드린 줄
부락스럽다 : 말을 잘 듣지 않다.
가스러진 : 털이 매끄럽지 못하고 거칠거칠한
바스러지다 : 헐어져 잘게 조각나다.
개진개진 : 추레하고 물기가 엉겨 붙은 모양
몽당비 : 끝이 닳아 모자라지고 자루만 남은 비
쓸리운 : 꼬리 같은 것이 땅에 쓸려 짧게 말려 올라간
빼짓이 : 조금씩 스며 나오는 모양
투르르거렸다 : 입을 약간 벌린 채로 부르떨었다.
무던히도 : 정도가 어지간히도
굴레 : 마소의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 매는 줄
줄행랑 : 도망
비슬비슬 : 덤비지 않고 피하는 태도로 힘없이 비쓱거리는 모양
발광(發狂) : 병으로 비친 증세가 일어남
앵도라지다 : 못마땅하여 마음이 돌아서다.
암샘 : 수컷이 암컷에 대해 욕정을 느끼는 행위
후리다 : 휘둘러서 치거나 때리다
유난스럽다 :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과 아주 다르게
장(場)돌림 : 각처의 장으로 돌면서 물건을 파는 장수
백중(百中, 百衆) : 명일(名日)의 하나로 음력 7월 보름날
호탕스럽게 : 기상이 높고 행실이 방탕스럽게
투전(鬪牋) : 노름의 일종
정분 : 정이 넘치는 따뜻한 마음
도로아미타불 : 애쓴 일이 효과 없이 되어 본디 상태로 되돌아감을 일컫는 말
염(念) : 생각
객줏집 : 상인의 물건을 위탁받아 팔거나 매매를 알선하는 영업을 하는 집
토방(土房) : 마루에 놓게 된 처마 밑의 흙마루
장(場)도막 : 장날과 다음 장날 사이
상수(常數) : 자연으로 정해진 운명
뒷공론(-公論) : 겉으로 떳떳이 나서지 아니하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
항용(恒用) : 드물거나 귀할 것이 늘 있어서 보통임
전방(廛房) : 가게. 상점
사시장천(四時長天) : 사시사철. 늘
실심(失心) :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맥이 빠짐
한풀 : 기운. 끈기
대근하여 : 견디기에 힘들어
건듯하면 : 조금만 주의를 소홀히 하면
널다리 : 널빤지로 건너지른 다리
고의(袴衣) : 남자의 여름 홑바지
고주(苦酒) : 독한 술. 술을 많이 마심. 또는 그런 사람
전 : 전적으로. 완전히
낫세론 : 나이로는
무던하다 : 성질이 너그럽고 수더분하다
훌칠 : 물살에 쏠릴
해깝게 : 가볍게
기특(奇特)한 : 말이나 행동이 기이하고 신통한
등어리 : 등허리
실족(失足) : 발을 헛디딤. 행동을 잘못함
피마(-馬) : 성장한 암말
딴은 : 아닌게 아니라
훗훗이 : 훈훈하게
아둑시니 : 어둠의 귀신
청청하게 : 소리가 맑고 시원하게
어지간히 : 거의 근사하게
봉평장에서 한 번이나 흐믓하게 사 본 일이 있을까. 내일 대화장에 가서 한 몫 벌어야겠네. : ‘사 본 일 있을까?’는 ‘물건을 많이 팔아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뜻이다. 물건을 주고 돈을 사는 행위가 장사이기 때문이다.
“달이 뜨렷다?” : 이 말은 이 작품의 지배적인 배경이 여름날의 달밤이 될 것임을 암시해 준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장꾼이라면 피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한다는 것으로 인물들의 신분과 처지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 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 계집의 목소리를 듣자, 문득 충줏집을 좋아하는 허 생원을 생각한 조 선달은 놀려대듯 슬그머니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 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 허 생원도 충줏집에 관심이 많으나 충줏집을 좋아하는 젊은 패거리들과 상대하여 이길 수 없으므로, 자신에게는 충줏집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 허 생원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단면을 보여 준 부분으로, 나이가 들긴 했으나 순박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 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 : 동이와 허 생원의 성격을 대비하여 나타내고 있다. 허 생원이 고집이 있고 완고한 반면, 동이는 다소곳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냉큼 꼴 치워. : 당장 내 앞에서 사라져.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짓해졌다. : 그다지 친숙하지 못한 사이라 서먹서먹한데 너무 지나치게 다룬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섬뜩한 마음이 들었다.
애숭이를 빨면 죄 된다. : 나이 어린 젊은이와 시시덕거리면 못 쓴다. 순진한 젊은이를 유혹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 허 생원과 동이의 따뜻한 인간애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표현이다. 서로 다투긴 했어도, 순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금방 화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 나귀의 생긴 모습을 묘사한 부분으로 늙은 허 생원의 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허 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 나귀의 행동이나 늙고 볼품없는 모습이 허 생원 자신의 행동과 모습에 닮아 있음을 깨달은 부분이다. 즉, 허 생원이 나귀와 동일감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 ‘나귀’에 대해서 하는 말이지만 ‘늙은 주제’는 ‘허 생원’을 동시에 가리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 긴 산중턱에 굽이쳐 난 길을 지금 걸어가고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 산 속이 너무나 조용하여, 달이 마치 짐승처럼 살아서 숨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 산중턱에 온통 메밀밭이 펼쳐져 있어서, 막 피기 시작한 꽃에 달빛이 내려 되비치는 모습이 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심히 황홀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이다. 그 날 달밤의 로맨스에 대한 미련을 지울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 허 생원이 동이를 꾸짖을 때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라고 한 말에 대하여, 실상 아버지가 없는 동이의 심적인 괴로움을 나타낸 말이다.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 성 처녀가 가족과 더불어 제천으로 도망간 사실을 연상해 볼 때, 동이가 허 생원의 아들일 것이라는 암시 부분이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 고갯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점점 더 힘들어, 나이가 들었음을 새삼 깨닫곤 하였다.
밤 물은 뼈를 찔렀다. : 밤의 냇물은 뼈에 사무쳐 찌르는 듯이 몹시 차가웠다.
총각 낫세론 동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 아직 총각의 나이를 면하지 못한 동이로서는 무던한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사정 이야기를 듣고 딱한 신세로군.
시원스리 말은 안 해 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 동이 어머니의 친정이 봉평이고, 허 생원이 성 처녀와 사랑을 맺은 곳도 봉평이라는 공통점을 미루러 볼 때, 동이가 허 생원의 아들일 것이라는 둘째 번 암시이다.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 허 생원은 동이가 자신의 아들일 가능성이 짙다는 것을 알아채고 확인해 가는 과정이다.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 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 동이가 자신의 아들일 것이라는 충격에 발을 빗디디었다는 표현이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 더 업혔으면 하였다. : 동이가 틀림없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물을 다 건넜는데도 둘의 처지가 서글픈 생각이 들어 더 업혀 혈육의 정을 느끼고 싶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 동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거의 확신하였기 때문에, 물에 빠져 몹시 추웠지만, 마음은 들뜨고 가벼웠다.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 발단부에 허 생원이 왼손잡이였던 것과 관련된다. 자연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왼손잡이는 유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자연 과학적 이론이나 근거로 풀 것이 아니다. 단지, 주인공 허 생원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 작품 해제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배경 : 어느 여름 밤,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메밀꽃 핀 달밤의 산길
성격 : 낭만적. 탐미적. 시적(서정적)
표현 : 낭만적 흐름을 보이면서도 사실적 묘사가 많이 나타남. 대화의 진행과 암시에 의한 주제 부각. 지명의 반복으로 의식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냄
제재 : 장돌뱅이 허 생원 일행의 삶
주제 : 장돌뱅이의 인생 유전과 인연. 인간 본연의 애정문제
▶ 작품 해설
1936년 <조광(朝光)>에 발표된 전지적 작가 시점의 단편 소설로서, 떠돌이 인생의 비애를 그려 낸 작품이다.
시적 정서가 향토적 배경과 토속적인 언어와 함께 전편에 산뜻하고도 애틋하게 흐르는 소설이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애욕의 신비성을 다루려 했다’고 그의 논문 “현대 단편 소설의 상모(相貌)”에서 밝히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의 목적을, 허 생원이나 동이의 인생에 대한 것보다 숨막힐 듯한 메밀꽃이 피는 달밤의 정경을 나타내려는 데 초점을 두었다. 조 선달, 허 생원, 동이 등은 인격체로서의 소설적 인물이 아니라, 당나귀와 같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사물의 차원에 해당한다.
줄거리보다 작품의 분위기와 서정성을 중시한 시적 수필의 소설로서 평가받고 있다.
▶ 작품 이해
■ “메밀꽃 필 무렵”의 등장 인물
“메밀꽃 필 무렵” 은 주로 세 사람의 인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데, 중심 인물인 허 생원은 숫기가 없는 ‘아둑시니’ 같지만 때로는 투전을 해서 모은 돈을 몽땅 날려버리는 호탕한 면도 있는 장돌뱅이이다. 젊은 시절, 성 처녀와 맺은 단 한 번의 애정의 연분(緣分)을 잊지 못하고 사는 외로운 인물이지만, 달빛에 감동하기도 하는 정서적인 일면도 있으며 평생을 나귀와 함께 장터에서 보낸 그는, 외곬으로 살아 온 소박한 자연인이란 점에서 전통적 토속 한국 사회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인물(副人物) 격인 조 선달은 독특한 자신만의 성격이 나타나 있지 않고, 허 생원의 성격을 보조적으로 가끔씩 나타내 주는 인물이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오, 생원." 같은 대화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다른 하나인 동이는 미혼 청년으로, 허 생원의 친자(親子)인 것으로 암시되는 외로운 인물인데, 크게 보면 허 생원의 분신(分身)이라 해도 과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떳떳지 못한 어머니의 직업이나 행위(의부를 얻음)에도 별 불만 없이 주어진 환경에 순응(順應)하며 집을 나와 돈을 벌어 어머니를 모시려고 하는 효자다. 본능적으로 여자(충줏댁)를 접하지만 허 생원의 질책(叱責)에 순종하는 그도 역시 자연인의 전형(典型)이라 할 것이다. 특히 별 기교가 없는 순박미(純朴美)를 지닌 점에서는 허 생원과 그 맥락(脈絡)을 같이 한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세상살이의 핵심에서 벗어나 소외된 떠돌이 주변인(周邊人)들이다. 즉, 하나같이 고독(孤獨)하고 쓸쓸한 사람들이다. 그 중 주인물(主人物)인 허 생원이야말로 정착할 곳 없는 유랑인(流浪人)의 가련하고 고독한 모습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그러기에 아이들의 나귀에 대한 놀림이나 ‘허 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등의, 주막에서의 묘사를 통해 허 생원을 늙고 볼품없는 나귀의 몰골에 자주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즉, 주인공 허 생원의 성격이나 작품상의 효과를 위해서 나귀의 과거 내력이나 초월(超越)적 운명과 함께, 그 형태상의 외모나 행동의 양상까지도 유사하게 설정했는데, 이는 소설의 예술성을 한껏 높이고 있다. 결국 양자 사이에는 깊은 공통점이 있게 되는데 정서적 융합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서정적 정감을 더 한층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소설의 주제를 이끌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나귀’ 의 목 뒤 털과 눈곱 낀 젖은 눈은 바로 허 생원의 모습이고, 암나귀를 보고 발광하는 늙은 나귀의 행위는 충줏집을 찾아간 허 생원의 행위와 부합(符合)되며, 단 한 번의 일로써 강릉집 피마에게 새끼를 보게 한 나귀의 운명은 허 생원이 성 서방네 처녀와 단 하룻밤의 인연에서 동이를 얻게 된 것과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허 생원과 나귀의 등식 관계가 단순한 묘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주제와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원초적인 삶과 본능의 세계를 추구(追求)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합일점(合一點)을 발견하고 거기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는 이 작품의 기본적인 관념과 일치(一致)하고 있다 할 것이다.
■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
봉평 장터와 봉평에서 대화로 가는 길의 달빛과 메밀꽃 그리고 개울은 하나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공간적 배경은 자연과 인간의 친화 또는 조화를 의미하는 낭만적 공간이다. 시간적 배경은 현재의 시간에 허 생원의 과거와 동이와 그의 어머니의 과거가 삽입되고 거기에 다시 동이와 허 생원 그리고 조 선달의 미래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일상적 시간이다. 공간적 배경은 강원도 봉평 장터와 봉평에서 대화에 이르는 메밀꽃이 흐드러진 밤길. 메밀꽃 핀 개울가는 단순한 자연적 정경에 그치는 배경이 아니라, ‘인생의 인연’을 상징하여 작품 주제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메밀꽃 핀 산길의 달밤은 낭만적인 자연 배경으로, 허 생원의 옛이야기를 꺼내는 데 효과적이다. 이런 낭만적인 배경은 작품의 주제를 애수(哀愁)에 찬 그리움으로 이끌어 간다.
■ “메밀꽃 필 무렵”의 구성
작품의 시작 부분에서 발생한 허 생원과 동이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과 둘이 부자 사이임이 확인되는 과정이 동일 선상에서 진행되는 단일 구성이다. 허 생원이 봉평장과 대화로 가는 길에 겪은 일과 그가 회상한 과거의 일이 뒤섞여 나타난다. 그런데 두 개의 다른 사건이 존재하나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단일 구성인 것이다.
■ “메밀꽃 필 무렵”의 표현
인간의 삶을 운명적으로 표현한 세 가지로서, 단 한번의 연애에 대한 추억과, 동행하는 ‘동이’가 아들이라는 생각과, 등장하는 세 인물들이 모두 불행하고 외로우며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진술 방법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사건을 전개시키는 기본적인 진술 방법과, 메밀꽃이 피어 있는 밤길의 감각적인 묘사와, 사건의 전개 및 성격과 심리 등의 표출과, 허 생원의 과거 행적 등 서술자가 필요한 부분만 간추려 해설하고 있다. 덧붙여 표현상 특징으로는 애욕과 혈육에 얽힌 인간의 정과 그 신비성을 서정적인 필치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고, 사실적인 배경 묘사는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체적 진행은 대화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암시와 추리 기법이 동원되고 있다. 아울러 문체에서도 간결한 대화와 사실적인 문체와 함께, 토착어와 순수한 우리말을 통해 토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한결 시적 분위기 연출하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나귀’의 상징성
허 생원과 나귀가 장돌뱅이 20년의 생활을 함께 지냈다는 점, ‘가스러진 목덜미’나 ‘개진 젖은 눈’ 등의 외모가 서로 닮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나귀가 암탕나귀를 보고 욕정을 부리며 발광하는 것이 허 생원이 충줏집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나귀는 허 생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동물로 허 생원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메밀꽃 필 무렵”에는 주인공 ‘허 생원’과 함께 그와 정서적으로 융합하는 동물로 ‘나귀’를 상징적으로 등장시켜 이 소설의 예술성을 한껏 높이고 있다. 즉, 주인공 ‘허 생원’의 성격이나 작품상의 효과를 위해서, ‘나귀’의 과거 내력이나 초월적 운명과 함께, 그 형태상의 외모나 행동의 양상까지도 유사하게 설정된 것이 그것이다. 이리하여 양자 사이엔 공통점이 있게 되며, 정서적인 융합까지도 가능했기 때문에 서정적 정감을 더 한층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소설의 주제를 이끌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나귀’의 목 뒤 털과 눈곱 낀 젖은 눈은 바로 ‘허 생원’의 모습이요, 암나귀를 보고 발광한 늙은 ‘나귀’의 행위는 충줏집을 찾아간 ‘허 생원’의 행위와 부합되고, 단 한 번의 일로써 강릉집 피마에게 새끼를 보게 한 ‘나귀’의 운명은 ‘허 생원’이 성 서방네 처녀와 단 하룻밤의 인연에서 동이를 얻게 된 것과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허 생원’과 ‘나귀’의 등식 관계가 단순한 묘사 관계에 머물지 않고, 주제와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원초적인 삶과 본능의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합일점을 발견하고, 거기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는 이 작품의 기본 관념과 일치하고 있다.
■ 문학사적 의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그의 다른 소설인 “돈”이나 “산” 그리고 “들”에서 볼 수 있는 향토색 짙은 서정성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앞의 작품들과 다른 점은 분명한 스토리를 가진 것이다. 허 생원이 봉평장을 떠나 대화로 가는 길에서 젊은 시절에 성서방네 처녀와 가진 정사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동이가 성서방네 처녀가 낳은 자기 자식임을 확인하는 내용에 성서방네 처녀의 가출과 사생아의 출산, 그리고 동이의 가출 등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첨가된다. 허 생원은 자연에 동화된 원시적인 인간의 삶을 살아간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그의 삶은 반사회적이고 반문명적인 성격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