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수 좋은 날.
오늘은 운수 좋은 날.
학창시절 문예반에서 심화학습까지 받았던 기억이 있는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이 생각나게하는 제목이다.
이 소설은 인력거꾼인 김첨지가 유독 돈이 많이 벌린 날 집에 돌아 와보니
병든아내가 죽어있는 모습을 보며 절규하는 모습으로 끝나는 현진건의 단편소설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때 마지막 김첨지의 절규하는 모습에서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먹고 싶다던 설렁탕을 사와도 먹지 못하게 된 아내를 두고 오열하는 김첨지의 모습은
글로만 읽어도 지금도 다름없이 목울대가 아파오는것이다.
김첨지가 아내한테 한 대사는 지금까지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으며
이렇게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그만큼 그 시대상을 잘 담고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이유로 비록 김첨지네의 슬픈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오히려 짧은 꽁트에 가가운 나의 이야기로 운수좋은 날의 패러디에 동참해보기로 한다.
머지않아 환갑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가르늦게 피아노연주의 매력에 빠져있는 내게
일주일중 화,금요일 아침은 무척 번잡한 시간이다.
피아노 렛슨 선생님이 정확히 오전 9시30분이면 울집에 도착하시기에
그 이전에 아침시간에 해야할 일들을 완벽히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주부들의 일이란 매일 아침나절에 하루분량의 일거리중
삼분의 이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더군다나 10시반정도에 렛슨을 마치고나면
통과의례처럼 간단하게 준비해 둔 다과로
렛슨선생님과 티타임을 약 30분가량 끝낼즈음에는
여지없이 남편과 함께하는 일터에서 호출 전화벨이 울리게 된다.
평일엔 10시 이전에 호출벨이 울리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렛슨이 있는날은 고객들이 몰리는 바쁜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도 피아노를 배우려는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하여 많이 배려해주는 옆지기이다,
오늘도 새 연습곡을 받아 버벅대는 맛보기연습을 마친뒤
어제 고객이 전해준 말랑한 송편 한접시에
상큼한 햇사과 한알과 핸드드롭 커피향을 즐기며
우아(?)하게 화(話)를 나누고 있을때...
"따르르르릉..."
내 손폰의 이 고전적인 벨소린 여고동기인 정애의 전화임이 틀림없으리..
"엽데여?"
"응, 난데... 너 머리 자를때 됐다구 했지?
"응, 시간나면 자를려구"
"지금 나 미장원에 왔는데 손님이 나 혼자뿐야.
지금오면 바로 자를수 있으니까 빨리 와"
"그래에? 잘됐네...요즘 머리가 너무 길었거든.알써...지금 바로 갈께"
요즘 미장원엘 가면 보통 한시간이상 기다려야 내 차례가 오니
그 지루한 시간이 무척 아깝다는 생각을 하던 내겐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싶었다.
일이 잘되려고 그런지 11시가 지났는데도 약국에서의 호출전화는 아직 잠잠하다.
오늘 무언지 좋은 예감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차고로 향하는중...
우편함에 얌전하게 꽂혀있는 직사각형의 봉투를 발견.
청첩장같진 않구...무슨 고지서인가???
이크!!! 제천경찰서장이 보낸 과속표창장이다.
지난 주말에 충남 아산으로 향하던 중
음성감곡부근 국도에 총총히 늘어선 과속감지카메라에
심도깊게 찍힌 33어 57** 번호판이 선명하다.
젊어서부터 별명이 "고속도로 배"인 옆지기의 스피드 부산물이다.
"흐~~음...이번엔 18Km초과이니 다행이구먼.. 과태료 삼만원 쯤이야...
어려운 나라살림에 애국하는 셈치고 기부해야지...
하마트면 2Km만 더 달렸어도 과태료가 을매나 더 비싼디...벌점은 또 얼마라구..."
그나마 다행이다.
애국애향의 실천인 이 표창장 수여하면서
평소에 남편에게 쌓인 앙금이
속 시원스레 씻겨지도록 훈계를 해야지...
지난번에 내가 과속딱지 한장 받았다구
여자가 죽을려고 고사를 지내냐는둥 이번 역전장날에 겁을 좀 사먹고 오라는 둥..
나를 엄청스리 구박했던 기억이 선명한데....
히힛..그대여 기다리시게...
이번엔 내가 그대를 구속하리라....
그의 약점을 양손에 움켜쥔것같아
오히려 룰루랄라~~~가벼운 마음이 되어 차를 몰고 쌔앵~~ 미장원으로 향했다.
근데 미장원 뒷골목이 평소엔 널너리하더만
오늘은 웬지 주차공간이 만만치 않네...
오호라~~ 쪼오기 담벼락 빈공간에 차 한대는 댈수 있겠군..
25년 경력의 운전솜씨를 내심 자신하며
담쪽으로 차를 스윽 드미는 순간
부~~욱.... 차 뒷문에 뭔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허걱!!!
이건 뭥미???
백미러엔 아무것도 없었는디...
다시 후진으로 차를 빼는순간!!!!
또한번 뿌우~~~욱 (이번엔 훨씬 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거 보통일이 아니구만...
콩닥이는 가슴을 안고 일단 내려서 확인해보니
으휴~~~ 골목길 주택가 담벼락에
야트막한 위치에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는것이 아닌가?
백미러의 사각지대에 있던걸 미처 보질 못한 탓이다.
이거 앞뒷문짝에 길게 걸쳐서 상처가 제법 깊게 파였네..
쳇!! 옆지기를 훈계하려다 오히려 내가 혼나게 생겼군.
새로 출고한지 한달도 안된 새차를 이리 긁어 놨으니...
그래도 사람을 다치게 한것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야...
만약에 골목길에서 놀던 어린아이라도 밀어 넘어뜨렸으면 어쩔뻔했어?
난 오늘 참 운이 좋은 사람인걸...
자기최면을 걸어가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어쨌거나 대기손님이 없는 미장원에서 운좋게(?)
미장원에 드가자마자 바로 회전의자에 앉아 긴망토를 걸치고
뒷머리를 설겅 자르는 순간...
귀에 익은 휴대폰의 모던벨소리..
모던한 이소리는 옆지기의 호출벨 소리이다.
핸펀을 여니 저쪽에선 수화기를 아예 내려놓고
고객들과 대화하는 효과음만 들려온다.
일케 바쁘니 빨리 오란 그이의 평소 신호이다.
알았써요 아랐써......가면 될꺼아냐~~~우 2 C...
머리는 처삼촌 벌초하듯이 대충 쑴펑 자르고
선명하게 부욱 긁힌 차문을 쓰린가슴에 담고 급히 약국으로 고고씽~~~
허나 약국에 가까이 갈수록 점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를 어찌 설명해야하지?
문을 열고 들어서며 어색한 미소로 출근 눈도장을 찍고난후...
아련한 눈빛과 최대한 겸손해진 목소리로...
"자기야... 나 걱정거리가 생겼는데 ..."
"뭘??? 또...뭔데?"
미리 운을 뛰워 놓으면 성격상 못 기다리는 그이다.
"혼 내키면 말 안할끄야.."
"뭔데??뜸들이지 말구...머라구 안할테니 말해봐 빨리..."
"증말이쥐? 머라구하면 나 오늘 점심 안먹을꼬얌"
얼마전 나의 위궤양 진단 이후론 열심히 식사시간과 복약시간을 챙기는 그이에겐
내가 제때 끼니를 챙기지 않는다는 협박은 그에겐 예민한 아킬레스건이다
이러저러해서 여차저차했더니 이 지경이 되었노라...
이렇게해서 사건의 전말을 세세하게 설명하게 되었는데...
무표정하게 듣고만 있던 옆지기가 낮은 목소리로 하는말...
"비록 내게 돈이 많은것은 아니지만
세상사에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로 스트레스 받지마..그런 스트레스가 모두 위궤양으로 돌아온것이니...
긁힌차는 공업사에 맡기면 말끔히 고쳐주거든..
어차피 차는 소모품일진데 좀 긁히고 쭈그러진들 타는데 지장없으니 괜차나...."
어머나!!! 경솔한 나의 운전습관에 불화살이 날아올것이라고 에감하고 있던터에
정말 예상치 못했던 남편의 반응에 오히려 내자신이 송연해진다.
매사에 완벽주의자인 그에게
제천경찰서장이 보낸 과속표창장을 수여함서
기회에 옆지기를 단디 혼쭐울 내 보려고 벼르던 나였지만...
내가 저지른 중죄(?)를 가볍게 사면해준 마음 너그러운 남편이다.
새차를 뽑은지 한달도 되지않아 대형사고를 치고나서 이를 어쩐다???
잠시나마 마음졸이던 내게 너그러운 말 한마디로
모든 근심을 씻어준 그이에게 내일쯤 속도위반 과태료 통지서를 내밀면서
이렇게 화답해야지....
"자기야... 그래도 벌점을 안받았으니 다행이야...
과태료는 내가 미리 납부했어영...
그동안 우린 너무 세금을 적게냈자나?..
괜차나여..."
아마도 천사가 환생한듯 너그럽고 착한 내게
그인 폭풍 감동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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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이날 우린 둘 다 운수가 대통한 날이죠?
한외숙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