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딸, 며느리들아...
바야흐로 이제 창밖으로는 녹색의 향연이 시작되는 계절이구나.
5월이면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기념일이 많기도 하지.
2일 석가 탄신일로부터 5일이 어린이 날, 8일은 어버이날,15일은 스승의 날,21은 부부의 날등
너희들로서는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보낼 수 없는 중요한 행사가 많으니
요즘같이 어려운 경제속에 가계지출이 적지 않을것임에 걱정도 되는구나.
너희들이 어렸을적에는 그야말로 먹고 살기에 바빠서 생일 한번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었으니
요즘의 풍요한 세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야말로 좋은세상에 복받은 아이들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내 젊을 적에는 자식들을 모두 대학공부를 가르치는것이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믿었다
지금은 대학졸업이 일반적이어서 자랑할일도 못돼지만
너희들이 자랄때는 너희 아버지께서 특별한 직업도 없었고
거의가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적지 않은 육남매를 키우는 일만으로도 우리에겐 버거운 짐이었으니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꿈결같은 일이다.
어려운 집안환경에도 불구하고 위로는 두 딸들이 가장노릇을 대신하여
밑의 남동생을 대학공부 가르치는데 한몫을 거들었으니 그 동생은 또 아래 동생들을 밭쳐주고...
이렇게 서로가 받들고 뭉쳐서 어려운 고난을 다 이겨내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큼의 공부도 끝내고
이때까지 큰 허물없이 떳떳하게 사회의 한부분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너희 육남매가 무척 고맙고 또 자랑스럽다.
눈을 감고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면 그 긴 세월이 한편의 영화와도 같구나.
돌아보면 내가 너희들에게 해준것이라고는 그저 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것일뿐..무엇하나 내세울만한것이 없구나.
비참하기 이르데 없는 가난속에 허우적대며 사느라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초등학교 입학식에만 가서 너희들을 맡겨논 뒤로는
한번도 학교문턱엔 가보지도 못했으니..
겨우 한번 찾아간 너희들의 대학 졸업식날에는
고생한 보람이 크게 다가와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고 또한 감격스러웠었지
우리가 보낸 80 여년의 세월속엔 얼마나 많은 살아오는 흔적들이 남아 있는지..
꿈과 희망은 물론이고 아픔과 고통으로 이루어낸 인생의 축소판이다.
인생길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들이 구비구비 쌓여있다
어느 한순간도 잊을 수가 있으랴..
너희들을 키우며 어려운 살림에 남들처럼 호의호식 시켜주지 못했지만
너희들은 온갖 재롱과 재주로써 우리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도 하고
어떤때는 더 잘해주지못한 아픔을 느끼게도 했었지.
그런 지난한 세월 속에서도 꿈은 결코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질긴 삶을 이어와 지금의 자리에까지 이어져 왔구나.
참으로 소중한 나의 아들,딸들아
너희들이 어렸을적에는 내가 너희들의 보호자 였는데
언제부터인가는 우리를 보호해주고 온갖 뒷바라지를 다해주는 너희들에게 미안하기도하고 고맙기도 하다.
나는 무슨 일만 생기면 마치 어린애모양 너희들을 죄다 불러놓고 투정을 부렸다.
사정이 여의치 못할때는 이 집 저 집으로 그 비싼 요금의 핸드폰으로 집집마다 내 속이 풀릴때까지 전화를 해댔으니
원하지도 않는 방송을 들으며 내가 전화를 내려놓을때까지 인내심으로
고가의 청취료를 지불해야만했던 너희들에게 지금 생각하니 정말 미안한 노릇이구나.
마음착하고 순종적인 우리집 큰 며느리와 상냥하고 애교스러운 작은 며느리
한 집안이 잘 되려면 그 집에 들어오는 며느리가 훌륭해야 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너희 두 며느리들이야말로 우리 집안의 기둥이자 구심점이다.
아무쪼록 내외간의 화목이 가정평화의 근본임을 명심하거라.
또 형제자매란 얼마나 소중한것인가
다행히 너희들은 외롭지 않을만큼의 넉넉한 형제자매를 지녔다.
지구상의 많고 많은 사람중에 한핏줄로 태어난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가 또 있겠느냐
동생은 형을 아버지처럼 그리고 형은 아우를 내 핏줄로 여기며 살아가기를...
언제나 동기간의 깊은 우애를 지니도록 애쓰라고 당부하고 싶구나
여기 적은 화목과 우애는 너희들 마음쓰기에 달려있음을 항상 기억해주면 좋겠다.
약사인 큰사위는 내 가까이서 우리 두 늙은이의 주치의가 되어 늘 우리의 건강을 돌보아주고 있으니
멀리있는 여느 자식보다 더 든든한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너희 육남매가 모두 건강하고 하나같이 부모에게 효심이 극진하니 지금의 우리는 더 바랄것 없이 너무도 행복하다.
어디 그 뿐이랴 ...
어릴적 소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나에게 제천시 노인 복지회관에서 열리는 한글교실은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나도 한글을 배워 보았으면... 한글을 잘 읽고 쓸수만 있다면...
내 마음의 표현을 마음껏 담아서 너희들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칠십이 넘도록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여 자식들에게 쓰고 싶은 편지한장 전하지 못하던 나에게
한글교실은 밝은 세상이 열리듯 환하게 길을 밝혀주었다.
처음에는 이 나이에 무슨 공부가 될까 싶어 시작도 하기전에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글교실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가르침에 용기를 얻어
드디어는 너희들에게 보내는 편지쓰기숙제까지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들도 용기있게 도전하는 자는 반드시 할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살아주길 바란다.
본인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어떠한 기회도 분명히 우리에겐 다가온다는 사실을...
이 어미가 이 나이에 한글을 배워서 뛰엄뛰엄 너희들에게 쓰는 이 편지야말로
내겐 더없이 기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기에...
전쟁터에서 백만 명과 싸워 이기기보다는 자신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라는 옛말이 있듯이
무엇을 시작할때 도전해 보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시작해보기 바란다
편지를 쓰면서 잔소리가 늘었구나.
이 모든것은 너희들에게 그동안에 하고 싶었던 어미의 당부라고 여겼으면 싶구나.
나는 너희들을 이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로 생각하고
훗날 저 세상에 가서라도 지금처럼 너희들을 사랑할 것이다.
이제 나의 글씨로 너희들에게 편지쓰는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를 흐뭇하게 여긴다.
2009년 오월에 어미가.
*이글은 노인복지회관에서 주최하는 가정의 달 편지쓰기 백일장에 제출한 친정엄니의 편지글을 모셔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