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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인간2편 /이외수

ds3ckb 2008. 9. 23. 17:11

 

 

 

더 이상 달이 뜨지 않는다.

아무도 달을 기억하지 못한다.

잇따라 일어나는 해파리의 공격, 고래떼의 죽은, 타들어 가는 인간의 몸....

"하느님,지금 저하고 장난치시는 겁니까?"

 

제 발로 찾아간 정심병원에서 만난 또다를 잔외인간들.

그리고 술병 뒤에 가려진 달을 보여주는 신비의 노인.

돈이 피보다 진한 미쳐가는 세상에서

눈부신 달빛을 기억하는 나, 나는 장외인간이다.

 

 

정문을 통과한 어둠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성큼 성큼 병동족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일본의 신흥종교 구라니까 미찌마라를 아십니까

웃음이 바로 불로장생의 지름길이요 만병통치의 대명사지요.물론 비웃음이나 헛웃음은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불량식품에 불과하지요

뢴트겐이란 별명으로 통하고 있었다. 환자의 마음속을 훤하게 들여다 본다는 의미로 붙여진 별명이다.

주탁차청:술은 마실수록 정신이 탁해지고 차는 마실수록 정신이 맑아진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일관된 건물들이 발악적인 기세로 녹지대를 잠식해서 마치 자연이 악성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것처럼 흉물 스러워 보였다.

기절해서 땅바닥에 엎어져 있던 경제가 간판을 바꾼다고 벌덕 일어나서 살사댄스를 추지는 않는다.

 

두 달 보름동안 양순한 환자밥만 먹다가 바깥에 나오니 성깔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걷기가 불편했다.다리를 움직일때마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뭉쳐 잇는 섬유질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춘천시 소양동에서 금불알이라는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서른두살 무명시인의 장외인간 체험기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닭갈비에서 금부처를 뽑아낸다는 화두가 신선하다. 어느날, 달이 사라진 세상에서 모월증후군을 앓는 진단을 받은 이헌수라는 시인이 드디어 선계와 속계의 중간지대인 모월도에서 달빛에 충만하게 젖는다는 판타지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1에서 54까지 이어지는 부제목의 독특함도 볼거리다.

 

3) 시인이 사물에 대한 간음의 욕구를 느끼지 못하면 시가 발기부전증에 걸린다.

9 )하나님 이름을 거북하게 하옵시며.

10)사라진 것들은 모두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의 깊이와 동일한 상처를 남긴다.

12)시인은 비가 내리면 제일 먼저 어디부터 젖나요 .

14)진정한 환쟁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모델은 먹지 않는다.

17)마음안에서 사라진 것들은 마음밖에서도 사라진다.

18)예술가의 인생이 연속극 스토리처럼 통속해지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38) 한번도 서울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동대문에 문지방이 있다고 우길 때 서울 사람들은 동대문에 문지방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까

40)아무리 기다려도 천사가 그대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대 자신이 천사가 되어 불행한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라.

48)내가 그것들에게 눈길을 주는 순간, 그것들도 내게 눈길을 준다.

 

부제목만 읽더라도 대충의 내용이 파악이 되도록 번호가 연결이 되는 치밀함이 있다. 게다가 아무도 묻지 않을 질문을 던져놓고 탁! 소리치게 해결을 해버리는 센스까지. 

 

시대의 급소를 이리저리 찔러대는 칼솜씨도 훌륭하지만 그러한 통념적인 사건들의 바탕엔 노인을 공경하거나 예의를 중시하는 작가의 철학이 깔려있어 말장난처럼 허접하단 생각을 이내 불식시킨다.

 

몇 년 전 이미 읽은 책이었음에도 뜨거운 여름휴가지에서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들, 갖가지 기기묘묘한 지구상의 사건들이 등장해 그럴 듯한 안주감으로 딱이었으니. 천하제일의 명주는 월광주이며 그 술을 담는 병에 이름까지 붙였는데 그게 백자심경선주병이다. 넉잔째 마시면 혈관이 투명해지고 미묘한 연둣빛 향기가 맡아져 시각과 후각이 공감각적 현상을 일으킨다는 월광주를 진짜 마셔보고 쓴 글이 아닐까, 싶게 맛있게 썼다.

 

아침마다 조간신문에 싸여

목이 잘리운 시체로

배달되는 사랑

믿을 수가 없어서

오늘도 나는

독약인 줄 알면서

홀로 술을 마셨네.

 

독작이란 시의 끝부분이다. 천년 묵은 고슴도치가 신령이 되어 섬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 새끼로 생각해서 소원을 빌면 무조건 다 들어준다는 전설 그대로 홀로 술을 마시던 무명시인이 그곳에서 소원을 빌고 꿈에 그리던 소요를 만났다. 가슴에 빛을 가득 품고 산다면, 언젠가 춘천 고슴도치섬에 들러 소원을 빌면 월광주를 마실 수 있을까, 꿈 하나 갖는다.

 

 

도사 할아버지가 동생부부에게 남긴 시 한편

 

예쁜 꽃부리 하나

속이 바싹 말라서

재앙을 스스로 불러들이네

예쁜 꽃부리를

더욱 예쁘게 만들고 싶다면

목에 진주를 걸지 말고

가슴에 눈물을 적실 일이니

세상 만물이

겉보다는 속이 중함을 알아야 하네

속이 마르고 마르면

결국 겉이 타버리는 법

그 이치를 알아

가슴을 눈물로 적실 때

지척지간으로 다가온 재앙이

만리지간으로 물러가리라

 

 

나는(화자 이헌수) 시인이다. 시가 써지지 않아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깨갱거리던 내가 어느 날,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 남소요는 달맞이꽃을 들고 와서 한 달에 한 번 달의 정기를 받기 위해 일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한다. 나는 그녀의 묘한 매력에 끌려들어 가게 된다. 그녀는 야무진 솜씨로 식당을 활력 넘치게 하다가, 화자의 잃어버렸던 시에 대한 경의와 설렘과 감성을 일깨우는가 싶더니, 어느 날 문자 한 통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녀의 사라짐과 동시에 달이 천체에서 사라진다.
대학 복학을 미루고 형(이헌수) 밑에서 식당 일을 하는 찬수에게는 제영이라는 여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식당을 맡기고 소요를 찾는 일을 시작하고, 세계는 서서히 달의 부재에 의한 미래종말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나는 소요를 찾는 일에 실패하고 사람들은 달의 존재에 대하여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혼란스러운 나의 앞에 백발의 노인이 백자심경선주병을 주며 달에 대한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그 후 나는 제 발로 국립춘천병원에 입원하고 거기서 세상살이에 적응하지 못하여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병동에서 나는 정신과 의사인 황기환 박사와의 면담을 통하여 달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아는 사람을 찾고 있으며 소요라는 여자에 대하여도 고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