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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ds3ckb 2008. 9. 10. 22:21

을지로 입구 명동에서 외환은행 본점을 왼쪽으로 끼고 명동성당을 향해 비스듬히 올라가다 보면
세월의 이끼가 잔뜩 묻어나는 초라한 3층 건물 하나가 나타난다.


놀랍게도 그 건물에는 ‘세월이 가면’이라는 간판을 단 카페가 하나 있다.
이것이 옛날에 그 유명했던 명동싸롱 자리였다.
말이 싸롱이지 그냥 대포집이었다.


이곳은 6.25 직후 문인들이 모이던 아지트였다.
1956년 이른 봄, 이 집에 도시의 시인이자 명동신사였던 박인환과 음악가 이진섭, 송지영, 가수 나에심 등이 어울려
마른 명태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이날 박인환의 표정은 여느 때와는 달리 낭만도 허무도 아닌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한 모습이었다.
철인 같았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일행은 나에심에게 노래 한 곡을 청했다.
그러나 나에심은 기어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박인환은 휴지에다 즉석 시를 써 내리고 있었다.
옆에서 그가 쓰는 시를 훔쳐보던 이진섭은 무릎을 치며 오선지 위에 옮기기 시작했고,
오선지 위를 흘러가는 악보를 보던 나에심의 입에서는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 나왔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잠시 후,
나에심과 송지영이 자리를 뜨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그러는 동안 노래가 완성되었다.

이진섭은 임만섭에게 악보를 건네면서 한 번 불러 보라고 청했다.
임만섭 그는 우렁찬 테너가수였다.

그가 그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행인들도 하나 둘 이 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노래가 작사, 작곡, 리사이틀이 모두 일순간에 이루어진 최초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노래가 그 유명한 ‘세월이 가면’이다.


그러나 박인환은 이 때 이미 생을 마감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밤 박인환은 죽은 첫사랑 애인이 묻혀있는 망우리 묘지를 찾았다.
그가 인생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 시는 즉석에서 쓰여진 게 아니란 얘기다.
삶을 정리하던 그는 옛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을 떠올렸다.

언제나 서늘한 그의 가슴에 남아있던 그녀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뭇잎에 덮혀 흙으로 돌아간 옛 사랑이었다.


그러나 박인환은 끝내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옛 애인의 묘소를 다녀와 그 추억을 시로 남긴 박인환은 죽기로 결심을 했다.

그는 천재시인 이상을 기린다면서 사흘 동안 내리 술을 마셨다.
결국 사인은 심장마비였지만 자살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56년 3월 20일이었다.


그가 쓴 시, ‘목마와 숙녀’도 그가 좋아하던 여류시인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에 충격을 받아 쓴 것이었다.
결국 그도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그가 죽자 동료 문인들은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를 망우리 묘지에 함께 묻어 주었다.


지금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읽다 보니 좋아 글 쓴 님의 허락도 안 맡고 슬그머니 옮겨 왔습니다.. .......